시청률 올라가는 소리가 들린다 푸른 잎 마를 때

 

최서현 방송작가

험준한 산세를 넘어온 바람은 더욱 거셌다. ‘스탠바이 큐!’ 하지만 예외 없이 촬영이 시작된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야외촬영을 해야 한다 <6시 내 고향>. 윗도리를 꼭 졸라본다. 이번 촬영지는 강원도 평창이다.

무밭, 출처=최서현 작가의 밭일이 끝나고 겨울이 오면 양분을 쌓기 시작하는 농경지. 그러나 강원도 자락의 무밭은 여전히 푸르게 빛났다. 겨우내 먹을 것을 걱정해 억센 무잎을 뿌려놓은 엄마들. 지붕에 매달아 찬바람에 말리면 무청이는 구수한 건어물이 된다. 먹을 것이 부족해 시래기 시래기지만 이제는 겨울철 미각으로 꼽힌다. 그리고 시래기를 만들기 위한 순무 수확은 문턱에서 시작된다. 강원도 무밭은 지금이 바쁜 때다.

일손을 돕는 노지훈과 키 무경민출처=최서현 작가 6시 내 고향에서 내가 맡은 코너는 트로트 가수 4명이 농촌에 부족한 일손을 돕는 내용이다. 산간 지역은 외국인 노동자가 오기 어렵고 사람이 많이 살지 않아 인력이 늘 부족하다. 활기찬 청년 가수들이 농촌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기대한다. 촬영 들어가기 30분 전. 가수들이 차례차례 도착했다. 풋내기 노장 엄마들도 모였다. 나는 이때 판자가 완성됐다고 말한다. 그 장 위에서 벌어지는 일은 내 손에서 떨어진 일이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지켜볼 뿐이다.

무를 먹어보는 신성이 김경민 노지훈 황윤선 출처=최서현 작가의 추위도 잊은 채 어머니들의 얼굴은 봄꽃처럼 활짝 피었다. 텔레비전에서나 보던 가수를 바로 옆에서 볼 수 있다니! 구걸자랑을 해야 되는데 가수들 노래부터 부르게 하기 분위기 좋다 하얀 입김으로 노래가 흘러나오고 어깨춤에 얼었던 몸이 녹기 시작했다. ‘첫눈 오는 날 평창역 앞에서~’ 구성된 엔카에 맞춰 무밭은 콘서트장이 됐다.

시래기 만드는 작업, 출처=최서현 작가의 흥겨운 춤무대가 끝나면 비로소 밭에 앉아 무 껍질을 자른다. 언제 이렇게 달라졌을까. 요즘은 무잎만 따고 잘 익은 무는 버리는 거야. 무 잎을 부드럽게 품종 개량한 결과라고 한다. 그 때문에, 무를 먹으면 일반 무보다 딱딱하지 않다. 밭에서 일하다 목 마를 때 꼭 마시기 좋게 국물이 많고 맛도 달다. 버리는 무를 보면 아깝지만 바구니마다 수북이 쌓여가는 무잎을 보면 마음 한구석이 금세 풍요로워진다.

3시간 넘게 수확을 하고 순청을 하러 가. 엄청나게 작업이 빨리 끝나야 새로운 걸 먹을 수 있단다. 지친 기색이 역력하던 가수들의 눈이 초롱초롱 빛나기 시작했다. 새로운 메뉴를 상상하며 손을 움직여 본다. ‘쿵짝쿵짝 4박자 속으로~’ 가수의 힘은 노래에서 나온다. 사박자에 맞춰 무청을 걷기 시작하면 호흡이 척척 맞는다. 옆에서 작업하던 엄마들도 4박자 노래에 엉덩이를 실룩이며 열심히 중얼거린다. 농사를 짓는 건지 춤을 추는 건지 모를 정도로 다들 신이 났다.

무정 노루기, 출처=작가 최서현씨의 해가 중천에 걸리면 일꾼의 일은 여기까지다. 이제 모든 일은 날씨에 맡겨야 한다. 겨울이 겨울답게 추우면 시래기가 노랗게 변하지 않아. 꼬박 한 달 시래기가 만들어질 시간이야. 매서운 겨울바람이 불어야 향긋하면서도 옅은 간지가 된다. 흐르는 강물도 막고 산도 말리는 이 계절이 야박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 하지만 시래기를 보면 따뜻한 봄일수록 마음이 누그러진다고 한다. 이 시래기를 팔아서 아이들을 먹여 공부시켜 대학에 보냈다. 농민들은 그 자부심으로 겨울을 맞는 것이다.

다 큰 아이들이 떠나고 나서야 허전했을 엄마들. 그 빈자리를 오늘은 가수들이 메웠다. 서울에 있는 아이들을 떠올리며 음식을 준비했기 때문일까. 10명이 먹어도 될 만큼 큰 밥솥이 등장했다. 밥통에 가득 있는 것은 고소한 시래기. 갓 지은 밥에서 나는 단맛과 고소한 시래기가 입맛을 돋운다.새벽에 버무렸다는 겉절이도 식탁에 올랐다. 그리고 어머니들의 비장의 무기! 올해 수확한 들깨부터 갓 짠 들기름까지 등장했다. 큰 대접에 시래기를 담고 겉절이로 절인 후 양념 간장을 가볍게 넣는다. 여기에 고소한 들기름을 돌려서 넣으면 시래기 비빔밥이 완성됩니다. 투박하지만 정겨운 시래기 비빔밥은 오싹했던 몸을 녹이기에 충분했다. 카메라도 잊은 듯한 가수들의 식탐에 어머니의 얼굴엔 미소가 가득하다.

날씨는 추웠지만 마음은 따뜻했던 촬영은 끝났다. 푸른 무밭과 파랗게 시들어 가는 간엽기를 보면 시청률 상승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시래기가 농민에게만 귀한 작물일까. 방송작가들에게도 더없이 소중한 겨울 아이템이다.

※ 이곳은 기상청의 뉴스레터 ‘하늘사랑’ 2월호(476호)에 게재되었습니다.

사진출처 최서현 작가